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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의 아침 칼럼> ‘품바’가 주는 의미

편집국장 0 752

<김병학의 아침 칼럼> ‘품바’가 주는 의미

사람이 태어나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게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이 들며 가시밭길의 연속이라는 의미일게다.


필자는 가끔 인터넷을 통해 ‘품바’ 공연을 본다. 우리가 알다시피 ‘품바’란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 다니면서 동냥하는 사람’(국립국어원)을 일컫는다. 또 다른 말로는 ‘각설이’라는 조금은 비하적인 표현도 쓰곤 한다.


하지만 이들이 펼치는 공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공연을 하는 ‘품바’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나 별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갖고 한다. 아니,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없는 매우 솔직하고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 본다.


비록 엿을 팔기 위해 다양한 장기(대중가요를 비롯한 창, 북춤, 심지어는  서커스까지)를 펼치고는 있지만 그들이 토해 내는 구성진 노랫말이나 몸짓에서 우리는 슬픔과 한을 잠시나마 달래기도 한다. 어쩌면 한없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하기도 한다.


‘품바’, ‘각설이’. 과연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사실 그들의 모습을 찾기란 크게 어렵지 않다. 전국 5일 장터나 웬만한 크기의 축제 등에 가면 으레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들 주위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뿜어내는 말과 행동들이 사람의 마음 벽을 허물기 때문이다. 단 한마디도 가식이나 허영이 묻어나지 않는다. 100% 인간 본심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우선, 그들의 공연을 보려면 자격(?)이 필요하다. 평소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고매(高邁)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격이 없다. 이들에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로 비춰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매한 삶(사실은 이중인격적이지만)을 살아가는 사람들서는 ‘품바’들이야말로 ‘천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하류인생들’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품바’들이 결코 천한 삶을 살아가거나 하류인생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보통 사람들이 나타내지 못하는 인생의 한과 슬픔을 차원 높은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작금의 시대에 이들보다 더 솔직하고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부류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리 질좋은(역시 의미도 없고 저질적인 거짓 웃음이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강연도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일까, ‘품바’를 보고 있노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출세(성공)라는 별 의미도 없는 목표를 향해 인간 본연의 가치는 팽개친 채 상상을 초월하는 비겁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배신하고 헐뜯으며 시기와 질투를 넘어 심한 경우 살인도 서슴지 않는게 우리네 현주소다.


물론 ‘품바’들이라고 고충이 없을 순 없다. 워낙에 많은 ‘품바’ 공연단이존해하기에 그들도 그들 간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을 하는 우리와 같은 경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장(特長, 특기와 장점)을 바탕으로 성심성의껏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펼치는 공연은 특별한 심사나 조건도 필요없다.


 많은 돈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3천원 하는 엿 한 봉지면 만족한다. 더욱이 유명인들이 펼치는 쇼나 행사처럼 화려한 무대나 장치도 필요없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낡고 부서지고 찢어지고 꿰맨 옷들이 더 필요하다.


게다가 고상한 말보다는 조금은 세속적이고 비하적인 말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라는 사람들은 없다. 세속적이고 비하적인 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엿을 사준다.(가끔은 팁도 준다)


‘품바’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이보다 더 우리네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는 그 무엇이 지구 상에 또 있을까. 또 ‘품바’공연을 봐야 겠다.


/ 본지 발행인, 언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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